감동적이지 않은데 보고 난 후 눈물을 흘린 최초의 영화 –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
주연 : 모리프 블라입트르, 유스투스 폰 도나니
시놉시스 : 심리학의 권위자, Dr. 톤은 이 야심찬 실험을 위해 신문광고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다. 그리고 14일간 이들을 고립시키기 위한 거대한 미로같은 지하 임시감옥을 셋팅한다. 연구자들은 감옥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험자들의 모습을 감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 연구자의 개입은 없다... 오직 실험실의 생쥐처럼 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이다. 이름대신 번호표를 달고 고개를 숙인 채 일렬로 걸어가는 죄수들과 곤봉을 차고 이들을 통제하는 간수들... 엄격한 심리테스트를 걸쳐 선발된 20명의 표본들 - 전직기자인 택시운전자 타렉, 7년간 한 번도 지각을 해 본적이 없는 항공사 직원 베루스, 엘비스 모창가수 등... 이들은 12명의 죄수와 8명의 간수로 나뉘어 14일간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실험 1일 - 처음은 게임처럼 즐거웠다. 그러나 간수는 여섯 개의 규칙에 따라 죄수를 통제해야 한다.
실험 2일, 3일... 한 잔의 우유, 치기 어린 장난들이 점차 그들을 진짜 간수와 죄수로 몰고가기 시작한다.
실험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하고 실험은 연구자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러나 아직 9일이 남았다...
보통 영화의 내용이 감동적이면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너는 내 운명”이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전도연의 연기가 마음에 들어서 밀양까지 보고 그가 나온 왠만한 영화는 다 봤을 정도죠.. 그런데 엑스페리먼트는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실험을 배경으로 하기에 영화가 딱딱하기까지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본 뒤에 울었습니다. 그냥 눈물만 흘린 것이 아니라 엉엉 울었습니다. 한숨이 나오는데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영화를 보면서 탈출하고 싶었한 배우들의 감정이 전이되었나봅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 현실 사회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이 눈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참 신기한 영화입니다.
답답함을 느껴보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그래서 감독이 만든 다른 영화를 살펴보았습니다. 몰락이라는 독일 패망에 관한 영화와 인베이젼이라고 외계의 생명체가 인간의 DNA에 들어와 번식한다는 에어리언식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패망은 한 번 보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감독의 세계관이 정말 궁금합니다. 어떻게 저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몰락이라는 영화는 이미 구했는데, 어서 봐야겠어요. 감독이 가진 세계관이 무척 궁금하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제부터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는 첫장면부터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벤츠가 택시라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타는 고급 승용차인데, 독일에서는 택시입디다. 벤츠를 타보고 싶은 분은 독일로 가시면 좋을 것 같고, 벤츠를 매일 운전하고 싶은 분은 독일로 가셔서 택시 운전사를 하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돈도 벌고, 벤츠도 매일 타고^^ 첫 장면부터 저를 놀라게 만든 이 영화는 영화 내내 나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원래 사람은 악하지 않은데 사회가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사람은 악한데 사회가 사람 속에 있는 악이 활성화되도록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본래 인간성을 상실하고 사회와 동화되어 악하게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니버는 이렇게 말을 하죠. “모든 인간 집단은 개인과 비교할 때 충동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때에 따라 억제할 수 있는 이성과 자기 극복의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개인적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훨씬 심한 이기주의가 모든 집단에서 나타난다.(8p) 즉 도덕의 문제가 개인적 차원에서 집단들의 관계로 옮겨가면 갈수록 이기적 충동은 사회적 충동을 누르고 득세하게 된다. (276p)” 이런 결과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집단적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단성의 광기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독일 나찌에 의해 자행된 학살이었다고하죠.
사실 일제에 의해 자행된 만행도 독일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이스라엘보다는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지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는거겠죠. 우리 조국의 아픔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지고 계신 아픔과 고통의 질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은 그것보다 결코 떨어진다고 말하기 어렵겠죠. 그런 점에서 모든 만행은 어떤 형태로든 – 국가에 의한 것이든, 한 개인에 의한 것이든 –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메타 집단(적절한 이름을 고르지 못해 소나기님이 알려주신 메타 블로그라는 단어 - 제 블로그 방명록을 참고해 주십시오 - 에서 메타의 개념을 가져왔습니다. 이하에서는 메타 집단을 감옥이라는 집단이 존재하도록 만든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에 의해 하위 집단의 이기심의 질과 양이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집단이 동질의 이기심과 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집단에 따라 이기심의 양과 질은 다르며 그것에 의해 그 집단의 도덕성이 평가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것이 소위 말해 메타 집단 곧 집단 위 집단, 또는 그 집단을 존재하게 하는 규칙을 만든 집단 - 영화에서는 그것이 DR. 톤으로 나옵니다. – 의 도덕성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속에서 메타 집단의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톤과 그림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들의 갈등은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세 번 다 간수 집단의 규칙 위반에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이고, 두 번째는 타렉이 간수들에 의해 폭행을 당했을 때 입니다. 세 번째로 검은 색 상자가 들어 왔을 때 마지막으로 다투게 됩니다.
첫 번째 폭행 후 톤은 간수들을 불러 놓고 “여러분의 질서 회복 능력을 높이 삽니다. 계속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길 바랍니다. 곧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겁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적절한 폭력의 사용을 허락하는 인상을 줍니다. 그 결과 간수들은 자신들의 폭력 행사에 더욱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히틀러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히틀러의 참모에 의해 이루어진 히틀러의 선동 정치가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히틀러가 당시 열악한 독일 사회에서 계속 전쟁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히틀러의 유창한 언변에 있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의 유창한 언변 뒤에는 그를 보좌했던 당시 최고의 선동 정치가였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히틀러가 연설을 하기에 앞서 청중들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감정이 고조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온도를 높인다든가, 몸을 움직여 땀이 나서 내부에 감정이 누적되도록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죠. 그 후 히틀러가 등장하여, 분출되지 못한 고조된 감정이 히틀러에 의해 해소되게 만듦으로 청중들의 히틀러의 연설이 가지는 위력을 강화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메타 집단의 암묵적 허가에 의해 감옥 속에는 끊임없이 이런 감정적 긴장 상태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보다 동물적 행동을 하기 쉽게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동물적 본능에 충실해진 인간은 보다 폭력적이 되어갔던 것 같습니다. 톤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은 감옥 안에 보다 많은 감정적 역동성이 형성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에서는 “4일 째 집단 구타라는 말에 권력 싸움이기에 내버려 두라고 방치합니다.” 사실 집단에서 약자와 강자의 싸움에서는 반드시 약자가 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메타 집단에서 규칙을 만들 때 약자가 보호될 수 있는 원칙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지금 계속 공부 중에 있습니다. 마틴 부버의 “나와 너”의 대칭적 개념으로는 인간 사회에서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최근 윤리학계 학자들의 견해와 같이 강자는 “너보다 낮는 나(지금 개인적으로 읽고 있는 학자의 이야기인데, 다 공부하게 되면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라는 원칙이 메타 집단에 의해 형성되어 있어야 진정한 평등적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게 없었습니다.
원칙들을 보면 “1. 죄수들은 번호로만 부를 것, 2. 명령하면 대답은 ‘예, 간수님’이라고 할 것 3. 취침 소등 후 대화 금지, 4. 음식은 남기지 말 것, 5. 간수 명령엔 절대 복종, 6. 규칙 위반 시 처벌됨”으로 나타납니다. 즉, 원칙 자체가 벌써 권력 싸움에서 죄수가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권위에 대한 순응 방식이 두 가지로 나누어 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 가지는 자신 스스로 인정하는 권위의 형태이고, 다른 한 가지는 외부에서 주어진 권위의 형태입니다. 스스로가 인정하는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동의도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주어진 권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권위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집단 내 동의가 있을 때 그것은 비로소 권위가 됩니다. 그 전까지는 폭력이 되죠. 바로 이 부분에서 메타 집단은 폭력으로서의 권위를 지향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잠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동물적 본능을 따르도록 만드는 동기가 되었음은 자명합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간수도 죄수도 모두 메타 집단(톤 교수)에 의해 동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감옥 내 감정적 대치 상태에 대한 불안에서였을까, 톤과 그림 사이에는 계속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그 갈등에서 만약 그림의 의견이 수용되었다면 영화가 그렇게 끝났을까? “인간성이 그렇게 말살되기까지 갔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톤이라는 한 사람이 가진 엄청난 이기성(자신의 이론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공명심)이 메타 집단의 규칙이 되었던 것이고, 그 결과 하위 집단이었던 감옥 속의 간수 집단은 엄청난 광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영화에서는 두 개의 집단이 형성됩니다. 그것은 벌써 상하 관계가 형성된 집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메타 집단이 만든 규칙은 이미 집단의 상하 관계를 전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하 관계는 결국 해소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답답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마 이런 답답함을 영화 보는 내내 느꼈음에도 해소할 수 없었기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울음으로 해소시킨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사실 영화 속에서 느낀 답답함은 사실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세상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들에 의해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제공해 주었으며, 보다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영화였습니다. 특히 인간의 심리를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만든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타인의 시점만 볼 수 있는 다른 삶이 있음을 인식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네요. 그만큼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영화였습니다. 추천하고 싶네요..
좀 더 쓰고 싶은 내용들이 있는데.. 좀 쉬었다가 다음에 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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